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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제 — 다시 하나님의 과녁을 향하여

제사장이 지은 죄는 무엇입니까?

이 제물의 생명이 곧 나를 대신한 생명입니다

Leviticus 4:3-12
공개일
주제
제사장수송아지제사 절차
본문
레위기 4:3-12

제사장이 지은 죄는 무엇입니까?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의 허물이 되었으면…” — 레위기 4장 3절

갈림길 앞에 선 긴 옷의 인물과 여러 방향으로 이어진 길

여기서 제사장의 죄를 개인적인 실수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Tim Hegg, p.29). 한편 랍비 히르쉬는 제사장이 하나님의 율법을 잘못 해석하거나 판단하여 백성을 그릇된 길로 인도한 경우로 봅니다(Hirsch, pp.110–113).

제사장의 사명은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고, 자신의 삶으로 그 말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율법을 잘못 해석하면 그 결과는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의 말을 믿고 따른 백성 전체가 잘못된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도 이 경고를 깊이 새겨야 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도 연약한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하며 성령의 조명을 구해야 합니다.

내가 전한 한마디가 누군가의 영혼을 살릴 수도 있고, 반대로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말씀을 맡은 사람에게는 지식뿐 아니라 두려움과 겸손이 필요합니다.


“백성의 허물”이란?

한 사람이 부유한 사람 쪽을 향하고 다른 사람들이 갈라진 길에서 넘어지는 장면

책임의 흐름 잘못된 해석이 공동체의 죄책으로 이어짐

아샴(허물)은 죄로 인해 책임을 지게 된 상태를 뜻합니다.

구별할 점: 에베소서 2장 1절에서 말하는 ‘허물’은 히브리어로 페샤입니다, 이는 고의적인 거역을 의미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도다” — 에베소서 2장 1절


젊지만 성숙한 수송아지

뿔이 짧은 젊은 수송아지가 서 있는 장면

충분히 자랐지만, 아직 늙지 않은

대제사장이 드리는 수송아지는 히브리어로 파르 벤 바카르라고 합니다.

  • 파르: 수소
  • 벤: 아들
  • 바카르: 소 떼, 소 가축

이 표현은 충분히 자랐지만 아직 늙지 않은 젊은 수소를 가리킵니다. 태어난 지 2년이 지나고 3년이 되지 않은, 힘과 성숙함을 함께 지닌 귀한 제물이었습니다(Mishnah Parah 1:2).

랍비 히르쉬는 이 수송아지의 모습을 영적 지도자에게 적용합니다. 지도자는 성숙해야 하지만, 오래 믿었다는 이유로 굳어져서는 안 됩니다. 거룩한 일조차 반복과 습관으로 변하면 “나는 이미 알고 있다”는 교만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젊은 수송아지와 같은 마음을 회복해야 했습니다. 충분히 성숙하되 날마다 새롭게 배우고 자신의 길을 다시 살피는, 젊은 성숙함이 필요했습니다.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다

두 손을 제물의 머리 위에 얹은 사람

제물과 나를 잇는 동일시의 표시

죄를 범한 사람은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동물을 만지는 행동이 아닙니다.

“이 제물이 나를 대신합니다.”

“이 제물의 생명이 곧 나를 대신한 생명입니다.”

안수는 제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표시였습니다. 죄인은 제물을 바라보며 자신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깨닫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살리기 위해 대신 죽을 제물을 허락하셨다는 은혜를 보게 됩니다.

이 모든 제사는 장차 우리를 대신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수송아지의 피가 보여주는 것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 레위기 4장 5절

회막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이 둘러선 장면

생명 · 대신함 · 속죄

성경은 생명이 피에 있다고 말합니다. 피는 제물의 생명을 상징합니다.

대제사장도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위해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었지만, 자기 죄를 위해서도 대속의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수송아지의 피는 대제사장의 생명을 대신하는 피였습니다. 그리고 이 피는 장차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 흘리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미리 보여줍니다.


휘장 앞에 피를 일곱 번 뿌리는 이유

“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의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 레위기 4장 6절

휘장 앞에서 붉은 방울을 뿌리는 긴 옷의 사람

가로막힌 경계에서 다시 열린 길로

휘장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경계를 보여줍니다. 제사장의 죄는 개인의 삶만 흐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교제까지 가로막을 수 있었습니다.

휘장 앞에 피를 뿌리는 것은 죄로 인해 막힌 교제의 길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일곱은 성경에서 완전함을 상징하는 수입니다. 그러나 레위기의 제사는 죄를 지을 때마다 반복되어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완전한 속죄를 단번에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운명하실 때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롭고 산 길이 열렸음을 보여줍니다. (히브리서 10:20)


분향단 뿔에 피를 바르다

막혔던 기도와 교제의 회복

“제사장은 또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들에 바르고…” — 레위기 4장 7절

두루마리 아래 짐을 진 사람과 제물이 서 있는 장면

기도와 교제의 자리

연기가 피어오르는 금빛 향로

굽은 나팔 한 개

분향단에서 올라가는 향은 성도들의 기도와 하나님과의 교제를 상징합니다. (계시록 5:8) 또한 성경에서 뿔은 힘과 권세, 구원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제사장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교제가 흐려지고, 백성을 위해 기도하는 그의 사명도 약해질 수 있습니다. 분향단 뿔에 피를 바르는 것은 죄로 막힌 기도의 자리를 다시 정결하게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죄는 기도를 막습니다. 그러나 속죄의 은혜는 다시 기도할 수 있게 합니다.


기름과 콩팥을 제단 위에 드리다

욕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시는 하나님

“수송아지의 모든 기름을 떼어낼지니…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을… 떼어내되…” — 레위기 4장 8~9절

한 사람이 기름과 두 콩팥을 제단 불 위에 올리는 장면

폐기가 아니라 거룩한 목적을 향한 전환

속죄제에서 다른 고기와 내장 등은 진영 밖에서 불사른 데 비해, 기름과 콩팥은 따로 떼어 번제단 위에서 태웠습니다.

히브리적 사고에서 기름은 삶의 에너지를 가리키며, 콩팥은 그 에너지를 어떤 방향으로 사용할지를 결정하는 내면의 깊은 곳으로 봅니다. 죄를 범한 사람의 행동은 잘못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있는 모든 열정과 욕망 자체를 폐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던 욕망과 힘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하나님을 향하도록 방향을 돌리라고 하십니다.

속죄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과정이 아닙니다. 죄에 사용되던 에너지를 거룩한 목적을 위해 다시 사용하시는 재창조의 은혜입니다.


심판의 불이 타오르지만 그곳은 ‘정결한 곳’입니다

“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송아지의 전체를 진영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사를지니라.” — 레위기 4장 11~12절

진영 바깥 재가 놓인 곳에서 빛과 길이 이어지는 장면

끝처럼 보이는 곳에서 시작되는 회복

제물이 불태워지는 장소는 진영 밖이었지만, 성경은 그곳을 정결한 곳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표현입니다.

죄로 오염된 것이 불태워지는 모습만 보면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다루심은 단순한 파괴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태워 없애시지만 죄인을 회복의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불태워진 재는 끝을 상징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새로운 출발을 위한 정결한 자리가 됩니다.

히브리서는 이 장면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받으셨습니다(히 13:12).

우리가 버려져야 할 자리에 예수님께서 대신 서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진영 밖으로 나가셨기에 우리는 다시 하나님께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